제주도에 도착하니 매섭게 바람이 불었다.
도로와 가깝게 맞닿아있는 길을 걷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자꾸만 도로에 몸이 가까워졌다.
조금이라도 힘을 놓아버리면 도로쪽으로 날아갈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주위에 있는 무거운 돌이나 가로등을 붙잡고 위태로운 내 몸을 고정하고 싶었다.
하늘을 보니 새들이 날고 있었다. 새들은 바다로 나아가려는 듯 보였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려고 힘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지해있었다. 관찰하다가 힘이 풀리면 단박에 몇 미터는 날아갈 것 같아서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카페에 도착하여 ‘숨결이 바람 될 때’ 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는 의학 대학교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생활이 6개월 남은 의사였다. 주 100 시간씩 몇 년을 일하는 와중에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며, 1 밀리미터 메스 깊이로 환자의 삶이 뒤집힐 수 있다는 무게를 견뎌야 했던, 신경외과 의사였다. 6개월이 남은 시점에는 여러 대학교에서 종신 교수직을 제안받고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여러 수상도 받았다. 그야말로 앞길이 탄탄한 젊은 의사였다.
축하의 팡파르가 들리는 그때, 그는 폐암에 걸렸다.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암이었고 암은 온몸으로 퍼져 신경계를 쇠약시켰다.
그는 자신의 온몸으로 퍼져가는 암의 존재를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몸과 정신이 어떻게 망가져갈지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던 경험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충격받은 것은 그의 태도였다.
암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무기력했다. 그 상황을 저항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던 것 같다. 그러다 그는 좌절하고 신을 원망하고 분노했다. 여러 문학, 철학, 과학 책을 정신없이 뒤지며 절박하게 이 상황에서 나아갈 수 있는 답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병원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미칠듯할 고통을 참아가며, 수십 개의 알약을 먹어가며, 36시간을 깨어있는 살인적인 생활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전보다 더 환자를 사랑하고, 더 완벽하게 외과수술을 집도했고, 후배들에게 친절했다. 그는 6개월의 레지던트 생활을 모두 마쳤다. 그와 동시에 그는 아내와 수많은 고민 끝에 아이도 가졌으며, 이 책을 집필했다.
생명이 뻗어가는 그의 삶과 함께 암 또한 계속해서 퍼졌고, 결국 치료도 버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높은 하늘에서 지하 저 끝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를 계속해서 나아가게 만들었던 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떻게 이렇게 용기 있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 죽음과 가까워지는 순간에도 어떻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죽음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보며 크게 감동받았다.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와 가족들과 친구들이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식을 보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고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큰 용기가 필요할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이따금씩 생각날 것 같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1.06 일기 - 지구 끝의 온실 (1) | 2025.01.07 |
---|---|
2024.12.10 일기 (0) | 2024.12.12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0) | 2024.02.12 |
어느 날의 일기들 (0) | 2024.02.11 |
Think Day (0) | 2022.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