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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어느 날의 일기들

Green Lawn 2024. 2. 11. 21:10

2024. 2. 10
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는 이모는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학구열이 강한 사람이었다.

방에는 항상 수많은 책들이 즐비했고, 몇 개의 책들에는 북클립이 꽂혀있었다.

이모와 할머니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이모는 어디를 갈 때 항상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이모와 함께 나가는 모든 곳을 좋아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어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모는 도서관 긴 책상에 앉아서 오랜 시간 공부했다.

나는 그 근처에 영상을 볼 수 있는 컴퓨터가 있는 공간에서 혼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다.
그때 그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던 순간들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내 몸보다 지나치게 크던 책상과 의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길목인 푸른 들판에 서있던 치히로의 모습과 햇살이 비치던 도서관의 풍경. 그러다가 심심하면 잘 읽지도 못하는 어려운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는 책꽂이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중간에 매점에 가서 이모와 밥을 먹었던 순간, 이모의 공부가 끝나고 도서관을 나왔을 때 들리던 폭포소리와 따뜻한 바람, 뜨거운 햇볕. 집가는 길에 보이던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 집에 도착해서 오빠와 할머니집 마당에서 곤충을 잡던 순간.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녔던 순간들.
가끔 그 순간이 그립다.
 
2024. 2. 04
지금 내 앞에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있다. 한 겹의 창을 두고 멀리서 그들을 바라본다.
해가 지는 시간이라 그런지 연두색은 아니고 짙은 녹색을 띠고 있다. 여러 나무들이 겹겹이 쌓여 서로의 둥근 돔 형태를 가리고 서 있다. 매우 촘촘하게 겹쳐져 있어서 그들의 뿌리는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다. 뿌리가 연결되어 있으면서 어떤 형태로든 서로 소통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지 궁금하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지 궁금하다. 너희끼리 소통이 가능해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곧은 너라도 혼자 살아가기에는 외로우니까.
뿌리가 연결되어 있으면 그들은 하나의 개체인가 각각의 독립적인 개체인가 생각하게 된다. 저렇게 울창하게 자라려면 많은 풍파를 겪었겠지. 문득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낮잠을 자다가 일어났다.
이상한 꿈도 꿨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던 것 같기도 하고. 꿈을 많이 꾸는데 일어나면 다 잊어버린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모르는 나의 이야기가 알지도 못 한 채 지워진다는 게 이상하다.
 
초록색 조명등을 샀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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