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ile and resilient

생각 8

요즘 읽은 글

어릴 때부터 나는 이미 본 영화나 글을 여러 번 다시 보는 버릇이 있었다. 요즘 여러 번 읽었던 글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남겨둔다. 이따금씩 최근 주의 깊게 읽었던 책과 구절을 기록해두면 내 의식의 변화와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

생각 2025.03.24

지구 끝의 온실

집 근처에 작은 화원이 하나 있다. 회사에서 집을 오갈 때나 커피를 사러 갈 때마다 눈길이 가는 가게였다. 화려한 화원은 아니었고 통창 뒤로 아기자기한 초록 잎을 달고 있는 작은 크기의 화분들이 있는 단아한 가게였다.지나가면서 ‘언젠가 한 친구를 집에 데려가고 싶네.’ 라고 생각했다.레옹의 마틸다처럼 멋지게 화분을 들고 집까지 당당하게 걸어가는 이상한 상상을 하며 혼자 웃었다. 하지만 몇 개월째 그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지는 않았다. 그 당시 꽤나 지친 상태였던 것 같다. 움직이지 않는 작은 크기의 식물 하나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 집에 나를 제외한 또 다른 생명체를 들인다는 것은 고민이 필요했다. 어렸을 적 잘 돌보지 못했던 전적도 있었고, 화원에서 생명력을 뿜어냈던..

생각 2025.01.07

숨결이 바람 될 때

제주도에 도착하니 매섭게 바람이 불었다. 도로와 가깝게 맞닿아있는 길을 걷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자꾸만 도로에 몸이 가까워졌다.조금이라도 힘을 놓아버리면 도로쪽으로 날아갈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주위에 있는 무거운 돌이나 가로등을 붙잡고 위태로운 내 몸을 고정하고 싶었다.하늘을 보니 새들이 날고 있었다. 새들은 바다로 나아가려는 듯 보였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분명 앞으로 나아가려고 힘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지해있었다. 관찰하다가 힘이 풀리면 단박에 몇 미터는 날아갈 것 같아서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카페에 도착하여 ‘숨결이 바람 될 때’ 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는 의학 대학교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생활이 6개월 남은..

생각 2025.01.07

2024.12.10 일기

여러 형태의 작별이 있다. 내가 의도한 이별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별도 있다.좋건 나쁘건 슬프고 아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지아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나는 작별할 때마다 파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헤어짐 축하 파티" 나는 작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 그러니까 축하해 주는 거지 나의 변태를.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절대 같을 수는 없어 나는 이미 압력이 가해져 형태가 변형되어버렸으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작'과 '끝'은 각각 존재하는 형태가 아니라 '시작과 끝'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시작과 끝은 함께 포개어져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그 틈은 매우 촘촘하여 이것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인지, 끝을 의미하는 것인지 ..

생각 2024.12.1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보는 책이 있다. 아무 생각 없는 지하철에서,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 그냥 그저 그런 어느 날.특별한 순간에 생각나는 책은 아니고 그냥 주기적으로 펼치게 되는 책이다. 너무나 매력적이고 소중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가장 강하게 휘감은 생각은 '나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가?' 이다.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운 일.누군가는 큰 충격을 받고 무너질 것이고, 누군가는 이 일을 잊기 위해 더 바쁘게 살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덤덤하게 받아들이겠지.사람마다 대처는 다르겠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나? 이 책의 가장 훌륭..

생각 2024.02.12

어느 날의 일기들

2024. 2. 10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이모는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학구열이 강한 사람이었다. 방에는 항상 수많은 책들이 즐비했고, 몇 개의 책들에는 북클립이 꽂혀있었다. 이모와 할머니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이모는 어디를 갈 때 항상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이모와 함께 나가는 모든 곳을 좋아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어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모는 도서관 긴 책상에 앉아서 오랜 시간 공부했다.나는 그 근처에 영상을 볼 수 있는 컴퓨터가 있는 공간에서 혼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다.그때 그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던 순간들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내 몸보다 지나치게 크던 책상과 의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길목인 푸른 들판에 서있던 치히로의 모습과 햇살이 비치..

생각 2024.02.11

Think Day

빌 게이츠는 90년대부터 일 년에 한 번 생각하는 주간(Think Week)을 보내왔다고 한다.온갖 종류의 책을 가지고 방 한 칸 크기의 오두막집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혼자 생각만 하는 주를 보내는 것이다.거대한 기업의 오너가 일주일 동안 혼자 오두막에서 생각만 하는 주가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었고, 동시에 이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빠와 오빠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 두 회사 모두 정기적으로 공장의 기계들을 멈추고 정비에 들어간다. 아마 대부분의 산업에 이런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사람과 기계의 다른 점이 있다면 기계는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정비 시간이 아까워 미루면 수십억의 기계들이 망가지게 될 것이고, 일주일을 멈추는 것이 부담돼서 지..

생각 2022.04.30

처음부터 잘 하고 싶어!

어릴 적부터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 사실 모든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여담으로 어릴 때 나는 박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거대한 크기의 동물, 곤충 백과사전이 여러 갈래로 찢어질 때까지 읽었다. 부모님께서 관련된 책을 많이 사주셨었고, 자연사박물관과 체험관도 많이 데리고 가주셨다.나와 오빠는 어릴 때 성향도 관심사도 비슷했는데, 나는 관찰을 좋아했다면 오빠는 분석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오빠의 초등학교 장래희망은 항상 과학자였다.우리는 부모님을 졸라 망원경을 사서 같이 별을 관찰하기도 하고, 현미경을 사서 밖에서 잡아 온 온갖 곤충과 식물을 관찰했었다. 어느 날은 개미 굴을 만들어서 개미들의 하루를 함께 관찰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집에서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불 피우는 실험(?)을 하다가 혼나..

생각 202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