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ile and resilient

생각 13

요즘 읽은 글 #2

Clotho 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운명',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비운이 가득했던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보며, 그녀의 모든 재능이 그녀의 불행을 위해 쓰였다는 글을 읽으며, 또 한 번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우연히 책방에서 집어 들고 그 자리에서 다 읽은 책이다.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무너져 내린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세상을 속였어. 그림을 그린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놀러 다니며 훗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 남들은 세상과 자기를 위하여 저렇듯 열심히 봉사하고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그림만 신주 단지처럼 모시고 다니며 이게 무슨 짓이냐?" 마사코의 글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품성이 고귀했다고 생각..

생각 2025.07.03

6월의 조각

#조각 1감정이 촉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점자를 더듬듯 오돌토돌한 돌기들을 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활자의 표면을 한 겹 벗겨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증폭된다. 나는 왜 덤덤하게 우울한 책을 좋아하는지 생각했다.감정적이지만 감정적이지 않으려는, 무너질 것 같지만 무너지지는 않으려는, 몸부림에서 오는 위로가 있다. 의도적으로 고통 속에 머문다.실수하고, 외면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나아간다. 그리고 이를 반복한다. 이 세계에서 진실되게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저항하며 끝끝내 지키려는,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동시에 질기고 강인한 존재들을 사랑한다. #조각 2요 근래 운동 루틴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요가 수업에 몇 번 다녀왔다.작년 휴양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요가 클래스를 들었는데 나에게..

생각 2025.06.14

기준

행복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함께 마시는 커피자연 속에 있는 것읽고 싶은 책이 있는 것가족들이 무탈한 것주말 아침에 햇빛을 바라보며 먹는 브런치할 일을 다 마치고 밤에 책을 읽는 시간생각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 행복의 다른 이름을 감사라고 칭하고 싶다.사소한 것에서 오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개를 돌려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친오빠를 포함해 나를 잘 아는 지인은 나에게 이야기한다. “너의 기준을 생각해, 우선순위를 정해봐.”얼마 전 지아 언니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재작년부터는 조금 알 것 같았고, 작년에는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가 되니 다시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나는 항상 무언가를 기다린다. 기다림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했다.

생각 2025.04.13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고 왔다. 너무 재밌어서 집에 오는 길에서부터 영상을 찾아보고 음악을 들었다. 인간의 내면을 선과 악이라는 두 인격으로 분리하고 이를 통제한다는 설정은 인간을 꿰뚫는 이야기 같다. 동시에 여러 우연이 겹쳐 운 좋게 진화한 우리 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구나 싶었다. 인간의 이중적인 면모. 탁월한 친화력과 협력적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큰 문명을 이룬 우리 종은 동시에 엄청난 잔인성을 지니고 있다.내가 속한 집단에 위험이 되는 정체성이 다른 타인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손쉽게 타인을 비인간화하고 잔혹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준다. 지킬은 자신의 일부분인 악한 자아(하이드)를 인정하지 못한다. The Confrontation의 가사에서도 드러나듯 악행을 일삼는 하이..

생각 2025.04.12

요즘 읽은 글

어릴 때부터 나는 이미 본 영화나 글을 여러 번 다시 보는 버릇이 있었다. 요즘 여러 번 읽었던 글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남겨둔다. 이따금씩 최근 주의 깊게 읽었던 책과 구절을 기록해두면 내 의식의 변화와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

생각 2025.03.24

지구 끝의 온실

집 근처에 작은 화원이 하나 있다. 회사에서 집을 오갈 때나 커피를 사러 갈 때마다 눈길이 가는 가게였다. 화려한 화원은 아니었고 통창 뒤로 아기자기한 초록 잎을 달고 있는 작은 크기의 화분들이 있는 단아한 가게였다.지나가면서 ‘언젠가 한 친구를 집에 데려가고 싶네.’ 라고 생각했다.레옹의 마틸다처럼 멋지게 화분을 들고 집까지 당당하게 걸어가는 이상한 상상을 하며 혼자 웃었다. 하지만 몇 개월째 그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지는 않았다. 그 당시 꽤나 지친 상태였던 것 같다. 움직이지 않는 작은 크기의 식물 하나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 집에 나를 제외한 또 다른 생명체를 들인다는 것은 고민이 필요했다. 어렸을 적 잘 돌보지 못했던 전적도 있었고, 화원에서 생명력을 뿜어냈던..

생각 2025.01.07

숨결이 바람 될 때

제주도에 도착하니 매섭게 바람이 불었다. 도로와 가깝게 맞닿아있는 길을 걷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자꾸만 도로에 몸이 가까워졌다.조금이라도 힘을 놓아버리면 도로쪽으로 날아갈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주위에 있는 무거운 돌이나 가로등을 붙잡고 위태로운 내 몸을 고정하고 싶었다.하늘을 보니 새들이 날고 있었다. 새들은 바다로 나아가려는 듯 보였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분명 앞으로 나아가려고 힘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지해있었다. 관찰하다가 힘이 풀리면 단박에 몇 미터는 날아갈 것 같아서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카페에 도착하여 ‘숨결이 바람 될 때’ 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는 의학 대학교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생활이 6개월 남은..

생각 2025.01.07

2024.12.10 일기

여러 형태의 작별이 있다. 내가 의도한 이별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별도 있다.좋건 나쁘건 슬프고 아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지아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나는 작별할 때마다 파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헤어짐 축하 파티" 나는 작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 그러니까 축하해 주는 거지 나의 변태를.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절대 같을 수는 없어 나는 이미 압력이 가해져 형태가 변형되어버렸으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작'과 '끝'은 각각 존재하는 형태가 아니라 '시작과 끝'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시작과 끝은 함께 포개어져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그 틈은 매우 촘촘하여 이것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인지, 끝을 의미하는 것인지 ..

생각 2024.12.1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보는 책이 있다. 아무 생각 없는 지하철에서,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 그냥 그저 그런 어느 날.특별한 순간에 생각나는 책은 아니고 그냥 주기적으로 펼치게 되는 책이다. 너무나 매력적이고 소중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가장 강하게 휘감은 생각은 '나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가?' 이다.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운 일.누군가는 큰 충격을 받고 무너질 것이고, 누군가는 이 일을 잊기 위해 더 바쁘게 살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덤덤하게 받아들이겠지.사람마다 대처는 다르겠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나? 이 책의 가장 훌륭..

생각 2024.02.12

어느 날의 일기들

2024. 2. 10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이모는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학구열이 강한 사람이었다. 방에는 항상 수많은 책들이 즐비했고, 몇 개의 책들에는 북클립이 꽂혀있었다. 이모와 할머니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이모는 어디를 갈 때 항상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이모와 함께 나가는 모든 곳을 좋아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어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모는 도서관 긴 책상에 앉아서 오랜 시간 공부했다.나는 그 근처에 영상을 볼 수 있는 컴퓨터가 있는 공간에서 혼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다.그때 그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던 순간들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내 몸보다 지나치게 크던 책상과 의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길목인 푸른 들판에 서있던 치히로의 모습과 햇살이 비치..

생각 2024.02.11